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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소마>리뷰 - 난해한 대박이네
    카테고리 없음 2020. 1. 31. 14:56

    (포 1러시아를 포함하고 있슴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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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미드소마>를 봤어요. 이 영화를 만든 앨리 애기스터 감독이 <유전>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지만, 저는 <유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어떤 작품인지 후속작인 <미드소마>까지 큰 관심을 끌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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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소마>는 홍보 방식부터 독특했습니다.기존의 어두운 밤을 가운데 펼쳐지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밝은 moning을 가운데 펼쳐지는 공포영화라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처럼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과 같은 방식을 파괴한 영화로 홍보하는 방법은 컨저링 이후 처음이라 더 흥미진진한 영화였습니다. ​ ​ ​ ​ ​ ​ 게다가 국내의 포스터에는 '90년에 한번 91간의 축제 노히웅 선택됐다.'라는 문구를 사용했어요. 아주 가끔 열리는 이미 하나의 축제 사이에 벌어지는 잔혹극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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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일인지 <써티데이즈> 오브과인츠>의 느낌도 과인이면서 밝은곳에서 하나아과인은 잔혹극이라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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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공포영화로 유명한 <루이즈>를 떠올리기도 하는 영화였어요. 이런 소견을 하면서 <미드소마>를 보았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소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재는 모두 흘러넘쳐온 귀취로 영화가 비슷한 고민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난이도가 높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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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의미심장한 그림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림을 이해하기 전에 영화 이야기부터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주인공의 초반 불행과 스웨덴에서 겪는 하지재의 비극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부터가 알기 쉽습니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대사가 많지 않고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정보도 많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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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고어성이 너희가 강해서 다시 보기 싫어집니다. 고어성이 너희 너무 강해서 내가 공포영화를 보러 왔는지, 고어 영화를 보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예요. 고어의 정확도가 너희가 강해서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고 화면에서 시선을 물들이듯이 달려요. 보면서 말하는 소견으로는 감독이 머리를 많이 쓴 영화인줄 알지만 영화 자체가 너희 불친절하고 잔인한 장면 투성이로 사고 투성이의 영화라고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큰 반전을 선물해 준 <메멘토>가 그리워지는 영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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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는 보면서 무슨 얘기인가 싶어 골치 아팠던 것은 미드소마와 대동소이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통해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이상의 충격을 주고 그동안의 고통을 잊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에 비해<미드소마>는 마지막에 내가 이해한 것이 옳다고 생각되며, 이<하지제>를 여기까지 잔인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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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칭찬 일색이지만, 저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공포영화라는 큰 틀 안에 고어영화가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를 다루는 방법은 서우 같은 고어영화의 방식을 다수 차용한 소견이 강할 것이다. 어디선가 위험해요. 다가가서 죽는 사람은 잔인하게 죽어요. 이것이 이 영화의 공포방식입니다. 어디서 두려움이 올지 모르고 연출을 할 생각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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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제 중간 동료가 사라지는데 주인공을 빼고는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게가장어이가없는부분은사람이눈앞에서죽고그다음날사람이없어졌는데별로관심을가지지않는다는겁니다. 또 이 영화는 사람이 사라질 때 하루에 두명씩 모습을 지웁니다. 영화의 배경은 스웨덴에서도 아주 깊은 산골짜기가 과임에 틀림없는 곳이지만, 이런 곳에서 사람이 한 명만 없어지면 그 사람을 찾으려고 마을을 돌아다녀도 모자랄 텐데, 마을 사람의 내용만 믿고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노인들의 자살 풍습을 공연히 과인의 전통이라고 하는 한편, 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인데.심지어 주인공 하나행 동료가 사라졌을 때도 반응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두 사람이 사라진 후에 두 사람이 추가로 사라진 형세에서 주인공은 이를 수상히 이고쯔눙 체하고 그 이상의 행동을 보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영화 초반부터 큰 상처를 갖고 시작돼 비정상적이라 해도 주인공의 남자친구조차 실종된 친구를 찾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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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그들은 땅의 사람이 무슨 1조 같은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보는 입장에서 더 답답했습니다. 자신들이 대나무의 소리를 선택한다는 데 변함 없이 영화는 불친절한 정도가 심해서 이 2가지가 섞이고, 후반부의 이 이야기는 그저" 흐르는 채" 보게 된 상태를 만들겠습니다. 영화를 깊이 보는 것을 연습화된 사람들에게 다른 것이 보 1고생이지만, 1단 영화는 어떤 재미인 집중하도록 하는 재미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나에겐 영화 중반부에서?하는 의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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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설정상 모순에 대한 설명도 없는 것이 보고, 자신감에 찬 감정을 주는 데 일조할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 하지제를 지내던 마을공동체 유지방식에 대한 정보가 뿌려집니다. 이들은 장로에 의해 교미가 허용되기 때문에 근친상간은 각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립할 수 없고, 필요한 경우 외부인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근친상간은 농담조로, 진심처럼 따로 질문이 오가면서 이 별난 마을에서도 피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상하게도 마을의 성경책 신내림(?)을 다소 배신당하는 소녀는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아이임을 알려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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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한번 머리가 아파집니다. 이 마을은 특이한 마을이긴 합니다. '태양'을 숭배하고, 마을 곳곳에 태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지제는 결미에는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입니다. 첫째, 이 마을이 '해'를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사람들의 일생을 마치 윤회처럼 여깁니다. 죽으면 새로운 아이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사람의 인생은 마치 계절과 같아서 그 주기를 날 8년에 나누어 4계절의 마지막 겨울, 72살이 되면 스스로 죽 소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그들이 자살을 왜 의식적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중요한 것일까요? 그들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 같은데 이것이 이 영화의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의미심장한 생각만 줍니다. 제가 해석하지 못한 것 하나 확률이 크고, 그 다소음으로는 맥거핀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바로는 주인공 하나행은 결미의식의 제물이라 죽을 운명인데, 굳이 '성경'을 이용하여 유인한 다소 음죽 하나가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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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마약처럼 촌락 특유의 환각제를 이용한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를 자주 사용한다. 마치 환각과 현실의 구분을 없애서 유아를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면 시간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주기 위해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런 효과는 이 영화 특유의 도도함과 기괴함 때문에 제게는 거북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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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든'주인공'이 있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어떤 1이 있는 오쏘 느냐죠.영화를 보면서 초반 소가족의 비극과 하지재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고, 이 두 요소를 한 영화에 넣었는지 생각해 봤어요. 이 의문은 영화가 끝나갈 때만 의문이었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웃는 것을 보고 한번 생각해 봤는데요.주인공은 동생으로 인해 소가족을 시각에 의한 필연적인 죽소음이 아닌 계획적인 죽소음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하지제'를 진행하는 촌락의 필연적인 죽 소음을 거부하고 계획적으로 72세에 죽 소음을 맞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주인공은 자살하는 바위에 대한 환각을 볼 때 소가족들이 그 바위 근처에서 죽어 있는 환각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제에 주인공 1행을 끌고 온 '펠레'과 주인공의 관련성도 중요한 듯 하는 것이다. '펠레'와 주인공 '대니' 전체, 소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펠레는 어릴 때 소가족을 잃고, 대니는 최근 잃은 차이입니다. 펠레는 이것에 대해 대니에게 말할 것이다. 이곳은 소가족을 잃은 나를 받아주고 있고 자신도 이곳을 소가족처럼 여긴다고 한다. 대니도 이곳을 작은 가족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이때가 자살하는 두 노인이 나간 뒤이니 이를 건너는 사람이 있느냐는 생각에서 부정적으로 봤으나 영화 후반부에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된 뒤, 옆에 있던 사람이 "이것은 소가족요? "자매님!"이라고 하면, 대니가 그들의 소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교루네고 용에는 잔인하고 기괴한 '하지제'는 이 영화가 공포 영화인에 있는 요소 1만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소가족을 잃었다 대니가 어떻게 이 촌락의 1원이 되느냐잉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대니는 이 영화 내내 웃는 모습이 없어요. 마지막 장면과 5월의 여왕이 되는 장면을 제외하면입니다. 이것이 의미심장하고, 대니는 초반부터 동생의 이상행동에 시달리며, 소가족의 죽음으로 비통함을 느꼈고, 자신을 경원하려는 동료들 때문에 불쾌하고 기괴한 촌락 때문에 불안해하고, 남자친구의 불륜으로 절규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웃는 이유가 어떤 1인지 생각해서 봤다. 우선 5월이 여왕이 되는 춤을 출 때 웃은 이유는 그녀가 스웨덴어를 이해하면서 기꺼이 웃었지만 사실상 그녀의 생각을 누군가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로 미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소가족, 친국, 남성 친국 전체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고 서먹서먹한 대화만이 오갈 뿐이었습니다. "펠레"와는 대화는 했지만, 그녀는 남자친구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불편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춤을 출 때는 같은 여자끼리 대화를 해서인지 불편함 없이 의사소통을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에 웃은 이유는 그녀의 모든 고통이 끝난 순간이라 웃은게 아닌가 싶다. 소가족, 친국을 잃는 불행과 남자친구 불륜을 목격한 그녀에게 눈에 보이는 불행은 불륜을 저지른 남자친구 친국입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사실상 그녀는 촌락의 1원으로 불행한 남자 친 국가 불에 타서 사망하게 되고 그녀에게 행동에 제약이 되는 불행은 전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에겐 비극이지만 그에겐 앞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촌락의 공동체로 남을 수 있게 됐기에 웃지 않았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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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장 화제의 공포영화 <미드소마>에 대한 리뷰를 써봤는데 이야기의 깊이는 얼마나 아름답지 않고 깊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영화의 고어성 때문에 더는 파헤칠 수 없어요.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맞는지 여부가 문제인데요. <토르> 같은 고어 영화도 공포영화의 범주에 들면 공포인데,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는 공포라기보다는 그냥 색이 밝은 고어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좋고 싫음이 갈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영화는 당신 가차 없이 기괴해서 나는 호불호가 심하다. 어떤 영화인지 알고 싶어 한번 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2번 3번 보기에는 부적합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후에 가끔 해석 문이 올라오면 내가 생각했는지 알아프소하고 봐도 이 영화는 다시 볼 1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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